전세사기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구제방안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지만 현장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특히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 구제방안 발표에도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연이어 사망,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에 종교‧노동‧주거‧복지 등 65개 시민사회단체가 전세사기‧깡통전세의 근본 해결을 위해 힘을 합쳤다.
미추홀구깡통전세피해시민대책위원회, 민달팽이유니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주거권네트워크,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세입자114),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 등 65개 시민사회단체는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앞서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지난 2월 28일과 지난 14일, 17일 각각 사망했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은 주범 남씨가 공범들과 공모,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3채의 전세 보증금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은 뒤 가로챈 혐의의 사건이다. 피해 규모는 총 126억원에 이른다.
가장 먼저 지난 2월 28일 오후 5시 40분경 인천시 미추홀구 소재 빌라에서 30대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빌라는 2011년 주택 근저당권이 설정됐고 A씨 빌라의 전세금은 7000만원이다. 하지만 A씨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또한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소액임차인은 전셋집이 경매 등에 넘어갔을 때 일정 금액의 최우선변제금을 보장받지만 A씨는 최우선변제금을 보장받지 못했다.
이어 지난 14일 오후 8시경 인천 미추홀구 소재 빌라에서 20대 B씨가 사망 상태로 발견됐다. B씨는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받지 못했으며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또한 지난 17일 새벽 2시 12분경 인천 미추홀구 소재 아파트에서 30대 여성 C씨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지인에 의해 발견됐다. C씨는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졌으며 집에서는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C씨는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의 피해자로 확인됐다.
이에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며칠 사이 잇따라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가 세상을 등졌다"면서 "한 달여 사이 같은 지역에서 세 번의 비보를 연속으로 접하니 슬픔과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진 배경에는 정부 정책 실패가 있다"며 "악성 임대인·공인중개사, 금융사와 보증기관 등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뿐만 아니라 '빚내서 집 사라', '빚내서 세 살라'는 대출 중심의 주거정책과 이를 통해 집으로 돈을 버는 투기 부양책이 주거불안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세입자들의 잇따른 죽음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벼랑 끝으로 등떠민 정부 정책에 기인한 사회적 타살"이라면서 "또한 이 문제는 사회적 재난 수준이 되고 있다. 잇따른 죽음 외에도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전세가 전국적으로 더욱 확대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책위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해결을 위해 ▲깡통전세 특별법 제정(공공매입과 피해구제 등)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전세가격(보증금) 규제 ▲전세대출‧보증보험 관리 감독 강화 등 요구안을 발표했다. 또한 특별법이 제정, 피해구제책이 마련될 때까지 경‧공매 중지와 퇴거 중단 등을 긴급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정부의 개선책으로는 문제의 근본 해결도, 피해 구제도 불가능하다"며 "기존 제도를 넘어서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과거(2007년) 정부에서도 부도 임대주택 특별법을 제정, 부도 임대주택 매입 후 공공임대주택 활용으로 기존 세입자들을 구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깡통전세 특별법도 깡통전세 주택의 공공매입과 피해구제가 핵심"이라면서 "이미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정부와 국회는 깡통전세 특별법을 조속히 논의,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전세는 세입자의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대책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전세 규제가 전혀 없어 세입자의 주거권을 위협하고 있다.
반면 OECD 국가에서 보증금 규모 규제는 일반화됐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보증금을 주택가격의 70% 또는 공시가격의 100%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대책위의 주장이다. 동시에 대책위는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가입 보증금 요건도 동일 수준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대책위는 보증금이 갭투기 등에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규제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정부의 무분별 전세대출 확대와 보증보험만 믿고 정확한 조사 없이 대출을 실행한 금융기관이 문제를 키웠다"면서 "임차보증금도 임대인이 상환할 부채"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이에 임대주택 소유자에 적용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임차인의 보증금을 산입, 임대인이 자기자본 없이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갭투기를 규제하고 전세 자금대출 차주에 대해서도 DSR을 적용, 전세 거품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세대출 보증보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 무분별한 대출 실행을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대책위는 특별법 제정으로 피해 구제방안이 마련되기 전까지 경·공매 중지와 퇴거 중단 등 특단 조치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경·공매가 진행, 낙찰되면 강제 퇴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책위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경·공매로 언제 쫓겨날 지 두려워하고,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고, 극단적 선택까지 잇따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